[칼럼] 해외 오케스트라 단체의 지휘자 선정과 작품 개발

  단원들의 자유로운 참여가 보장되는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의 존재 이유는 청중에게 탁월한 연주를 들려주는데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무대 위에서 직접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단원들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우수한 음악적 기량을 갖춘 단원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등 세계적인 교향악단은 단원 선발을 위한 오디션부터 매우 까다롭고 정교하다. 빈 필하모닉은 빈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에서 3년 이상 근무해야 오디션 자격을 준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오디션 통과 후 2년이 지나야 수습 단원의 딱지를 뗄 수 있다. 그러고도 자신이 소속된 파트 단원들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단원 전체가 참여하는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표를 받아야 정단원이 될 수 있다. 선발 오디션은 높은 수준의 앙상블을 보장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지휘자는 한 도시를 대표하는 '음악 시장(市長)'

하지만 단원을 뽑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지휘자를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어떤 경우에는 지휘자가 단원 선발과 평가에도 관여하기 때문에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단원들을 확보했더라도 100명에 가까운 개성이 강한 음악가들, 특히 수석 주자들을 이끌어가는 것은 지휘자의 몫이다. 무엇을 연주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레퍼토리 선정, 즉 프로그래밍도 결국 지휘자의 손에 달려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얼굴이다. 미디어, 매니저, 음반회사와 오케스트라가 만나는 접점이다. 청중의 발걸음을 음악회장으로 옮기게 만드는 홍보대사다. 청소년에게는 훌륭한 음악교사다. 오케스트라 발전을 위한 장기적 플랜과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한 도시를 대표하는 음악 시장(市長)’이다.

지휘자 선정 과정은 단순한 인재 채용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케스트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발판을 놓는 일이다. 협찬과 매표 수입의 증가로 직결될 수 있는 기폭제다. 언론에 모처럼 오케스트라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므로 국공립 오케스트라라고 해서 정치적 입김이나 시장의 독단적 판단으로 차기 지휘자를 결정한다면 음악계나 음악애호가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 민주적 방식으로 악단이 운영될 리도 없다. 새로 부임한 지휘자의 리더십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단원들의 적극적 참여와 노력이 절실하다. 지휘자와 단원, 경영진 사이에 신뢰감 구축이 급선무다.

처음부터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겠다고 음악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화려한 청춘의 많은 시간을 연습에 바친 것은 독주자로 성공하겠다는 포부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대학을 졸업했다고 모두 솔리스트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오케스트라 입단은 이들에게 차선책에 불과하다. 훌륭한 음악적 비전과 해석을 제시해줄 지휘자와 함께 음악을 만들어간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퇴근 시간만 기다려지는 평범한 월급쟁이와 다를 게 없다. 지휘자 선정 과정에 문제가 발생해 가령 5년간 수준 미달의 음악감독이나 수석 지휘자 아래에서 연주한다면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수석 지휘자도 훌륭하지만 객원 지휘자들도 세계적 수준이다. 이들과 함께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지휘자에겐 경력만큼이나 실제 리허설이나 연주에서 단원들과의 호흡이 중요하다. 외국의 경우 객원 지휘자를 선정할 때부터 차기 음악감독이나 수석 지휘자를 염두에 둔다. 두세 명으로 압축되는 후보들이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다음 지휘자를 물색해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단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리더십

사실 초창기의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선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19세기 말 이후에 창단된 대부분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무대 위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은 지휘자의 욕심으로 탄생되었다. 영국 지휘자 토머스 비첨 경은 부잣집 가문에서 태어나 막대한 재정적 뒷받침을 배경 삼아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차례로 창단했다. 하지만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 독재형 지휘자의 장기 집권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오케스트라 운영 과정에 단원들의 의견이 대폭 반영되는 추세다. 상명하복식의 권위나 리더십에 의존하기보다는 종래에 지휘자에게 집중되었던 권력이 단원들에게도 재분배되는 양상이다. 단원들의 역할은 더 이상 그냥 무대에서 악기만 연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휘자의 권력은 축소되는 대신 단원들이 지휘자 선정 과정에도 개입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쯤 해서 상임 지휘자를 가리키는 용어에 대한 정리부터 해야겠다. 음악감독은 연주곡목과 협연자, 객원 지휘자 선정은 물론 단원의 임용과 해임에 대해서까지 거의 전권을 행사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휘자를 가리킨다. 펀드레이징이나 행정적 수완도 발휘해야 한다. 이에 반해 예술감독은 글자 그대로 예술적인 부분에만 관여하면 된다. 수석 지휘자는 가장 많은 정기 연주회를 지휘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음악감독이나 예술감독은 수석 지휘자를 겸한다. 미국에서는 보스턴 심포니, 뉴욕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등 대부분의 교향악단이 음악감독이라는 칭호를 고수한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상임 지휘자는 수석 지휘자 아니면 예술감독이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만 카펠마이스터라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고 파리 오케스트라, 프랑스 국립 교향악단,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체코 필하모닉, 로마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는 음악감독이 사령탑을 맡고 있지만, 런던 심포니, 런던 필하모닉,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예테보리 심포니,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로테르담 필하모닉, 빈 심포니, 헬싱키 필하모닉, 함부르크 심포니,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 베를린 필하모닉, 헝가리 국립 교향악단, 오슬로 필하모닉 등은 수석 지휘자, 뮌헨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 등은 예술감독 체제다.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수석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 

베를린 필하모닉이 꿈의 직장인 이유

지휘자를 뽑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할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휘자 선정을 위해 위원회를 따로 둘 것인가. 지휘자 선정 위원회를 가동한다면 어떻게 위원을 구성할 것이며 위원은 누가 선정할 것인가. 선정 위원회의 역할과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후보가 두세 명으로 압축되었는데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라면 최종 결정은 누가 할 것인가. 가령 선정 위원이 모두 7명이라면 이 가운데 단원 대표는 몇 명까지 포함할 것인가. 위원회가 최종 선정한 지휘자를 대다수의 단원이 반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 번이라도 객원 지휘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만 후보를 고를 것인가. 여러 단계를 거쳐 소수의 후보군으로 압축되는 과정에서 어떤 정보를 언론에 공개할 것인가. 공개한다면 적절한 시점은 언제인가. 누가 선정 과정을 공개하는 대언론 창구 역할을 맡을 것인가.

미국 교향악단은 워싱턴 내셔널 오케스트라를 제외하면 모두가 민간 교향악단이다. 지휘자 선정 위원회에 이사진과 시민 대표 등 비음악인과 단원 대표가 같은 비율로 참여한다. 이사 대표는 이사회에서, 단원 대표는 단원 전체회의에서 뽑는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선정위원회의 위원장은 양측과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맡는다. 행정감독은 위원회에 참석하지만 투표권이 없다. 선정 과정에서 조언은 할 수 있지만 자기 의견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투표도 불가피한 경우에만 실시한다. 가능하면 토론을 거쳐 거의 만장일치로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투표에서 과반수를 겨우 넘겨 음악감독을 맡는다면 처음부터 리더십과 권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기 때문에 최종 결과물인 연주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단원들이 수석 지휘자를 뽑는다. 두세 명의 후보를 놓고 단원들 간에 찬반 토론을 벌인 다음 투표를 실시한다. 3분의 2 이상 찬성표를 얻어야 수석 지휘자가 될 수 있다. 행정감독은 명목상 베를린 시를 대신해 독일 문화부가 임명하는데 이 또한 단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꿈의 직장으로 손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휘자 선임 과정에서 오케스트라 운영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고 있음을 느낄 때 비로소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연주가 우러나오는 법이다. 국내의 경우 단원 투표만으로 지휘자를 뽑는 것이 무리이겠지만 이들의 의견을 대폭 반영하는 방향으로 선정 시스템을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훌륭한 지휘자를 선정하면 혁신적인 프로그래밍도 따라오는 법이다 

  [이장직 필자소개]

이장직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에서 음악이론을 전공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음악전문기자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서양음악연구소 특임연구원으로 있다. <음악회 가려면 정장 입어야 하나요?> 등의 저서와 <성녀에서 귀부인으로: 음악의 수호성인 체칠리아의 모습을 한 초상화>등의 논문이 있다. 최근에는 음악과 외교, 음악과 미술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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